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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플러스인생]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의 기적처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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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8-11-18 | 조회수 | 5442 | |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의 기적처럼 [플러스인생 (pp86~88)] 플러스 스토리 - 김기현 작가 & 강사 저는 1994년 우리나라 유명 대학병원에서 구강안면치과 수술을 받던 도중 의상의 과실로 기도에 이물질이 끼어 약 3분간 질식하는 대형 사고를 겪었습니다. 당시 외교관이 되고픈 꿈을 안고 이제 막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해 공부하던 새내기 시절의 일입니다. 그 사고로 저는 하루아침에 그만 눈꺼풀을 제외한 온몸을 꼼짝할 수 없는 전신마비와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절망의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가족들은 고통 속에 울부짖었고 저 또한 충격과 낙심으로 몸부림쳤습니다. 부모님은 어렵게 병원을 상대로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고 배상을 원하는 소송을 내셨으나 결과는 비참하게도 패소하여 우리는 의사나 병원측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채 병원에서 쫓겨나다시피 퇴원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천만다행히도 몇 년에 걸친 피나는 재활훈련으로 전신마비 증상은 차츰 사라져서 다시 기적처럼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어눌하게나마 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껏 캠퍼스를 활보하며 공부하던 자취는 어디가고 뭔가를 붙잡고 엉금엉금 기다시피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말하는데도 한참 걸렸지만 더 이상 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어두워진 제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부모님은 전국 방방곡곡을 수소문하여 용하다는 의사 앞에 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나 산 넘고 물 건너 그 어느 곳을 가도 흐려진 제 시력은 예전처럼 밝아지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을 좇아 굿도 하고 조상의 원혼을 달랜다며 큰돈을 들여서 제사도 지내고, 신기가 있다는 무속인에게 제 눈을 맡겨 보았지만 모든 일이 허사였습니다. 부처 앞에 정성을 다해 새벽 3시부터 밤9시까지 100여일 간 삼천배 불공도 드렸으나 시력에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허무감에 사로잡힌 저는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한참을 울면서 떨어질 결심을 하는데 갑자기 ‘지옥이 존재할까?’하는 의문이 섬광처럼 제 머리 속을 스쳤습니다. 억울하게 실명하고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죽을 결심을 하였는데 죽어서도 좋은 곳을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더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이후 저는 마음을 고쳐먹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초재활훈련을 수료하고 다니던 연세대학교에 복학했습니다. 예전에는 교재도 마음껏 읽을 수 있었고 다니고 싶은 곳도 자유롭게 다니면서 공부했었는데 이젠 시력 없이 귀로만 듣고 더듬더듬 다니면서 공부를 하려니 그 속이 답답하고 온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1004년도 건강한 모습이었을 때는 예배나 하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채플시간에 몰래몰래 신문이나 보며 딴전을 피웠는데 두 눈의 시력을 잃고 학교로 돌아간 뒤 드리는 채플시간에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하나님, 정말 살아 계시다면 나 좀 도와주세요’라며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눈물이 담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2000년도, 저는 드디어 아주 운명적이고 중요한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필수로 듣는 ‘성서와 기독교’라는 기독교 교양과목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배우고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뒤 저는 간절한 기도로 매일 매일의 삶을 이겨내기 시작했습니다. 유학과 결혼이라는 여성시각장애인으로서는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커다란 비전을 두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보이는 친구들이라면 하지 않았을 기도, 즉 “오늘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 없이 무사히 다니도록 해주세요”, “급한 과제가 생겼으니 책을 읽어줄 사람을 보내주세요”와 같은 작지만 제겐 소중한 기도도 매일같이 드렸습니다. 기적과 같은 삶의 여정 제 삶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줄기 빛도 없이 온통 절망과 슬픔뿐이던 제 마음이 차차 밝아져 웃음도 되찾고 원망의 마음도 사그러 들었습니다. 어렵게나마 잃어버린 시력에 적응도 되어가고 혼란스런 삶의 모습들도 차츰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돌보심으로 비록 1급 시각장애인이지만 자취를 하며 공부하는데 안전사고 한번 나지 않고 훌륭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제가 가진 시각장애를 잘 이해하고 평소 제가 기도하던 제목 그대로 착하고 자상한 비장애인 형제와 축복 속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한대로 미국으로 건너가 올해 5월에 보스턴 대학에서 재활상담학 석사과정을 장학금을 받고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의 기적과 같은 삶의 여정을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 (2008, KOREA.COM)라는 자전 에세이에 담아 세상을 향해 간증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현재 저는 10개월 된 아들 예승이의 엄마로 사랑하는 남편의 한 아내로 그리고 믿음의 대학 평택대학교에서 재활상담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로 바쁘고 감사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찔했던 사고 당시부터 14년이 지난 오늘 이 순간까지 저의 삶 하나하나를 돌아볼 때 그 어느 것 하나 주님의 은혜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전신마비 환자에 시각장애인의 모습이었으나 주님은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처럼 나의 삶을 만지셔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영생을 허락하신 그리고 제 안에 영안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김기현 / Korea.com刊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 저자, 평택대학교 재활상담학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