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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일보 희망편지]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9-02-04 조회수 5593
(아래 글은 조선일보 희망편지에 채택되어 단행본 <희망편지 (문이당)>에 실린 김기현 저자의 글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


의료사고로 전신마비
시력 잃고 만난 생명의 빛
장애인 재활상담의 길로


나는 1994년 외교관을 꿈꾸며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다. 내게 잊을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온 것은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음식물을 씹을 때마다 턱관절이 아파서 방학을 이용하여 치료하기 위해 국내 유명 대학병원에서 구강안면치과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도중 의사의 과실로 기도에 이물질이 끼어 약 3분간 질식하는 대형 사고를 겪은 것이다. 그 사고로 하루아침에 그만 눈꺼풀을 제외한 온몸을 꼼짝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가 되었다. 가족들은 고통 속에 울부짖었고 나 또한 충격과 낙심으로 몸부림쳤다. 부모님은 어렵게 병원을 상대로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고 배상을 원하는 소송을 내셨으나 결과는 비참하게도 패소한 채로 퇴원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몇 년에 걸친 피나는 재활훈련으로 전신마비 증상은 차츰 사라져서 기적처럼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어눌하게나마 말도 하게 되었다. 어두워진 내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부모님은 국내외 곳곳의 유명 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그러나 그 어느 곳을 가도 흐려진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허무감에 사로잡힌 나는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한참을 울면서 떨어질 결심을 하는데 갑자기 ‘지옥이 존재할까?’하는 의문이 섬광처럼 머리 속을 스쳤다. 억울하게 실명하고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죽을 결심을 하였는데 죽어서도 좋은 곳을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더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울 것 같았다.

마음을 고쳐먹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초재활훈련을 수료하고 연세대학교에 복학했다. 예전에는 교재도 마음껏 읽을 수 있었고 다니고 싶은 곳도 자유롭게 다니면서 공부했었는데 이젠 시력 없이 귀로만 듣고 더듬더듬 다니면서 공부를 하려니 속이 답답하고 온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시각장애인 대학생으로 힘들게 학업을 이어가던 그 무렵 나는 아주 운명적이고 중요한 만남을 갖게 되었다. 기독교 교양 수업에서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교수님을 통해 고난을 유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린 것이다. 나는 교수님과의 교제와 수업을 통해 영혼이 새롭게 소생하는 경험을 했다.

그 후 내 삶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 한줄기 빛도 없이 온통 절망과 슬픔뿐이던 표정이 차차 밝아져 웃음도 되찾고 원망의 마음도 사그러 들었다. 어렵게나마 잃어버린 시력에 적응이 되었고 혼란스런 생활도 차츰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비록 1급 시각장애인이지만 자취를 하며 공부했는데 안전사고 한번 나지 않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내가 가진 시각장애를 이해하고 도와줄 착하고 자상한 비장애인 남성과 축복 속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 건너가 2008년 5월에 보스턴대학교 재활상담학 석사과정을 장학금을 받고 졸업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은 후 기적과 같은 내 삶의 여정을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라는 제목의 자전에세이에 담아 삶의 어둠 속에 처한 분들께 희망을 전해드릴 수 있는 길도 열렸다. 11월에는 장애인재활협회로부터 공로상을 받는 데 이어 많은 시각장애인분들께 희망을 드리고자 KBS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채택되어 불행에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촬영했다. 나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고통 속의 주인공이었지만 삶이 새롭게 바뀌는 행복을 만났고 마음의 눈으로 모든 삶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었다.

아찔했던 사고 당시부터 14년이 지난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내 삶 속에는 곳곳에 감사와 기쁨이 스며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 하나하나를 돌아볼 때 그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한 것이 없었다. 앞으로 많은 장애인들의 직업 재활상담가로, 약자들에게 마음의 눈으로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희망전도사로의 꿈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 현재 돌을 앞둔 건강한 아들 예승이의 엄마이자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로서 그리고 평택대학교에서 재활상담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이며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바쁘고 감사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고난을 통해 내가 새롭게 얻은 기쁨과 행복을 모든 장애인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최초의 여성 시각 장애인 교수를 향한 나의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기현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 저자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입학, 철학과 졸업
가톨릭대학교 특수교육 대학원 졸업
보스턴대학교 재활상담학 석사

2008년 11월 28일 장애인재활협회 공로상
평택대학교 재활복지학과 강사
KBS 인간극장 출연(2008년 12월 29일~2009년 1월 1일)
KBS 1대100 출연(2008년 12월 23일)
KBS 라디오 김기현의 재활일기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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